[잡상] 요즘 국회를 보면서 느낀 점 내키는대로

뉴스링크: <한미FTA 비준> 본회의장 최루탄 아수라장

한-미 FTA 비준이 끝났다. FTA 자체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이 하실 말이 많으실 테고, 나 역시 별 감흥이 없다. 오히려 내 관심을 끈 부분은 요 근래의 국회가 보여준 모습들.

최루탄을 터뜨렸다는 얘기를 보니 생각이 나는데, 얼마 전에 조선일보에서 '線 넘은 보좌관들… 국민이 선출한 '헌법기관'에 행패'란 제목의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어디까지나 이 기사에 쓰인 Fact가 100% 사실이라는 전제 하의 얘기지만)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예전에는 치고받고 싸우더라도 상호가 합의한 규칙 하에서 싸웠는데, 요즘에는 그런 게 사라졌고 오직 상대편을 제압하여 우리 편의 의사를 관철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얘기.

구K-1이라고 매일 놀림을 받다 보니 자주 잊혀지지만, 어쨌거나 국회의원 개개인은 선거를 통해 국민들에게 주권을 일정기간 위임받은 대표자들이다. 지금의 세력구도는 어쨌거나 국민들이 만들어 놓은 것. 원내의 교섭단체/의원에게 주어진 파워는 딱 그 의석 수 만큼이다. 개별 정치인에게는 억울할 수도 있고 불합리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게 그 사람에게 주어진 전부다. 그 사실을 못 받아들이고 징징거리다 흑화하면 국개론을 펼치겠지. 그걸 가지고 정치를 해야 한다. 그게 대의 민주주의 체계 아래에서 정치판이 짜여지는 기본 원리다.

뻔한 얘기지만, 다수결이 진리는 아니다. 현란한 말빨과 탄탄한 논리로 상대를 설득할 수도 있고, 정 머릿수가 딸린다면 타 정당/무소속 의원들을 추가로 영입해 올 수도 있고, 그래도 안된다면 밖에서 언론플레이를 할 수도 있고, 목숨걸고 막아야 한다면 물리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다만, 그 모든 일들은 주권을 위임받은 사람들에 한해서, 그리고 플레이어들이 상호 합의한 경쟁의 규칙(예: 사람에게 연장질은 하지 않는다 / 의원은 의원만 두들겨 팰 수 있다 / 여자 의원은 여자 의원만 두들겨 팰 수 있다 등등) 아래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 두 가지 원칙을 벗어난 행동은 내가 보기엔 상대편 의원에게 권력을 위임한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사를 짓뭉개버리는 처사다.

물론 일을 저지른 측에서는 나름 급하고 중요하니까 보좌관들이라도 나서서 상대편 의원들을 물리적으로 저지하고, 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려서라도 회의진행을 막으려 했을 것이다. 퍽이나. 최루탄이 필요악이라면 날치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자신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상대에게 위임된 주권을 무시해버리려 든다면, 정치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연장 하나 뽑아들고 휘두르면 끝인걸.

모두가 합의 & 승복할 수 있는 대원칙과, 상호 존중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에게 당연한 것이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은 아니고, 내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도 나와 대등한 권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덤.
솔직히 난 한-미 FTA보다 '불의'에 굴하지 않는 정의의 투사들과, 그들이 알게 모르게 망가뜨려 놓을 원칙을 다시 세우느라 흘릴 피가 훨씬 더 두렵다. 순결한 투사양반들이야 불의를 타도하면 끝이겠지만, 나는 그들이 망가뜨려놓은 체계 안에서 살아야 하니.

덧글

  • BigTrain 2011/11/23 10:31 # 답글

    YS, DJ같은 오야가 사라지고 정치구도가 '나-적-적의 적-적의 적의 적' 구도로 재편돼서 힘싸움 위주로 흘러가다보니 정치가 갈수록 막장이 돼 가는 것 같습니다.

    한미 FTA, 반값등록금, 대북관계 등의 이슈는 더 이상 문제해결을 위해 논해지는 게 아니죠. 그저 소재일뿐..
  • 스카이호크 2011/11/23 15:25 #

    전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가치는 항상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링크해 둔 기사를 보고 어? 싶었고, 어제 최루탄 사건을 보니 그런 거 전혀 없더군요.

    대한민국이란 체계가 그렇게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깽판을 쳐도 될만큼 튼튼했으면 좋겠습니다만...
  • 행인1 2011/11/23 23:35 # 답글

    사실 정당이라고 자칭하는 집단들이 '정책'과 '정강'아 아니라 '몸싸움'만이 유일한 차별요소라고 여겨지는 상황이 더 막장스럽기도...
  • 스카이호크 2011/11/24 06:41 #

    정책과 정강이 인기가 없으니 (그렇다고 새로운 걸 제시할 능력과 의지도 없고) 몸으로라도 때워서 관심을 끌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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